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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뉴스

  • 273
    [미국뉴스] AI 급습에 설 자리 잃은 기자…워싱턴포스트 스포츠면 폐지 사람과사회
    영어에서 체육부 기자는 저널리스트보다 스포츠 라이터(Sports Writer)로 통상 표기된다. 긴박감 넘치게 흘러가는 경기를 실감 나게 묘사하고, 급변하는 승부의 추에 따라 표변하는 관중의 열기를 세밀한 통계와 함께 기사에 녹여야 하기 때문이다. 엄밀한 팩트체크 능력뿐 아니라 '작가'로서의 자질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이런 체육부 기자들조차 인공지능(AI) 등이 초래한 '대량 해고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AP통신은 4일(현지시간) 미국 주요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의 스포츠섹션이 이날 폐지됐다고 보도했다.이에 따라 미국프로농구(NBA) 댈러스 매버릭스의 '빅맨' 앤서니 데이비스의 워싱턴 위저즈 이적 같은 스포츠계의 빅뉴스도 WP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고 통신은 전했다.야구·농구 등 프로스포츠에서 명문구단이 즐비한 뉴욕·보스턴과는 달리 워싱턴에는 유명한 팀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WP는 탁월한 역량을 지닌 기자들을 바탕으로 스포츠 분야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쌓아왔다.1980년대에 워싱턴에서 자란 스포츠 팬들에게 WP는 워터게이트를 보도한 밥 우드워드의 신문이 아니라 '야구의 시인'이라 불린 토마스 보스웰, 미식축구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크리스틴 브레넌 등 유명 스포츠 기자들의 신문이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스포츠 분야에서 전문지 못지않은 유서 깊은 전통을 자랑하는 WP 스포츠면이 폐지된 건 인공지능(AI)의 대두와 수익률 감소의 영향이 크다.뉴욕타임스(NYT)는 WP가 체육부 기자들을 포함해 전체 직원의 30%가량을 감원했다고 전했다. 전체 기자 800여명 중 해고 기자는 300명이 넘는 것으로 NYT는 파악했다.맷 머레이 WP 편집국장은 "솔직히 지난 수년간 우리 신문은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진단한 뒤 "더 경쟁적이고 복잡해지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향후 국내 뉴스와 정치, 비즈니스, 건강 섹션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그간 우리 신문은 과거 지역 종이 신문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생성형 AI의 등장 등으로 인해 지난 3년간 온라인 검색 트래픽이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WP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그레이엄 가문의 돈 그레이엄은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1940년대 후반부터 스포츠면부터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며 "이제 신문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고 썼다.AI 등에 타격을 입은 건 비단 스포츠 부문뿐만은 아니다. WP의 지역 뉴스(메트로) 섹션은 축소되고, 신간을 소개하는 북섹션과 뉴스 팟캐스트 '포스트 리포트'(Post Reports)도 중단된다고 NYT는 전했다.
    202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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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2
    [미국뉴스] 재미있는 미국 역사 3 <'불법' 이민의 탄생> 사람과사회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미국으로의 "불법" 이민이나 "합법" 이민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불법으로 이민을 가려면 먼저 어길 수 있는 법이 존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미국 이민은 미국이 독립국이 된 1700년대 후반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유럽인들이 정착민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왔습니다. 학자 이브 턱과 K. 웨인 양은 이민자들이 이주한 땅의 법을 따라야 하는 반면, 정착민들은 기존 시스템을 파괴하고 자신들만의 법을 시행하게 된다고 기술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헌법을 새로운 법으로 제정하자, 이민자들은 거의 제한 없이 미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신세계"에서 환영받았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초기에는 이민자들이 주로 북유럽과 서유럽에서 왔기 때문에 반아일랜드 정서 와 반가톨릭 정서가 만연했습니다. 19세기 중후반에는 남유럽과 동유럽, 그리고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미국인들은 중국인, 이탈리아인, 그리고 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의 존재에 반감을 품게 되었습니다.앤젤 아일랜드 이민국 구금 구역 벽에는 그곳에 구금되었던 이민자들의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랜 심문으로 인해 일부 이민자들은 수개월, 심지어 수년간 구금되기도 했습니다.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역사학과 교수인 매들린 Y. 쉬는 캘리포니아와 같은 일부 주에서는 이 시기에 지역 이민법을 통과시켰지만, 이러한 법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거나 법원에서 무효화되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1882년 중국인 배척법이 제정 되기 전까지는 누가 입국할 수 있고 누가 입국할 수 없는지를 규정하는 연방법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중국인들은 금광, 공장, 철도 , 농업, 특히 서부 해안 지역에서 일했습니다. 이 이민자들은 미국 인구의 0.002%에 불과했지만, 백인 미국인들은 저임금과 기타 경제 문제의 원인으로 그들을 지목했습니다. 경제적, 인종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배제법은 중국발 이민을 거의 전면 금지했고, 학생이나 외교관 같은 특수 계층에게는 몇 가지 예외만 허용했습니다. 또한 같은 해에 통과된 이민법은 빈곤층, 정신 질환자, 또는 전과자의 입국을 금지했습니다.매우 소수의 중국인만 합법적으로 이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국인이라면 불법으로 입국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현실화되었습니다."라고 쉬 씨는 말합니다. "중국인들은 거주 증명서를 소지해야 하는 유일한 집단이 되었는데, 이 증명서는 그들이 실제로 합법적으로 입국했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1917년, 아시아 금지 구역법(Asiatic Barred Zone Act)은 매춘부, 일부다처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그리고 전염병 환자뿐만 아니라 아시아로부터의 대부분의 이민을 금지했습니다.아시아인 배제는 1924년 이민법 까지 이어졌는데 , 이 법은 1790년 귀화법에 따라 귀화 시민이 될 수 없는 모든 사람을 금지했습니다. 이 귀화법은 원래 자유로운 백인만이 귀화 시민이 될 수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러나 1924년에는 멕시코인, 흑인 미국인, 아메리카 원주민 등 이전에 배제되었던 집단이 시민권을 획득했고, 이 법은 실제로 아시아인에게만 적용되었습니다.엘리스 섬의 이민자들미국인의 약 40%가 엘리스 섬 이민국이 60년간 운영되는 동안 그곳을 통과했던 사람들의 후손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이민 절차는 어땠을까요?하지만 1924년 이민법이 이민 정책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출신 국가에 따른 수적 상한선 또는 할당제를 도입한 것이었습니다. 이 할당제는 유럽 대륙의 남유럽과 동유럽 출신자들보다 북유럽과 서유럽 출신자들에게 엄청난 특혜를 제공했습니다. 쉬는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이전의 제한 조치가 "미국으로의 이민 증가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민자의 대다수가 유럽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할당제는 미국이 너무 많은 이민자, 특히 앵글로색슨계가 아닌 이민자들을 너무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위기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1924년 이민법은 2017년 9월 제프 세션스 미국 법무장관이 불법 체류 아동으로 미국에 온 사람들에게 합법적인 체류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인 DACA(유년기 입국자 추방 유예)를 폐지한다고 발표하면서 다시 뉴스에 등장했습니다. 세션스 장관은 앞서 1924년 이민법이 "미국에 도움이 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하지만 컬럼비아 대학의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 및 역사학 교수인 메이 M. 응아이 에 따르면 , "1924년 법은 거의 보편적으로 우리 역사의 오점으로 여겨진다.""전 세계 사람들을 인종과 국적에 따른 일종의 선호도 위계에 따라 순위를 매겼어요."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엘리스 섬의 그레이트 홀1924년 할당제는 1960년대까지 대체로 유지되다가, 새로운 법률이 제정되면서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미국이 발급할 수 있는 비자 총 수에는 매년 제한이 있습니다. 미국 시민권 및 이민국(USCIS)에 따르면, 미국은 한 국가에 허용되는 총 비자 수의 7%를 초과하여 발급할 수 없습니다.1965년 이러한 변화 이전에는 아메리카 대륙 내 이민에 대한 숫자 제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매년 각 국가로부터 일정 비율의 이민자만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을 때, 미국이 멕시코 이민에 공식적인 제한을 둔 것은 이번이 처음 이었습니다.그 이전에는 멕시코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자유롭게, 그리고 흔하게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하트-셀러 이민법이 통과된 후, "1965년 이전에는 미국 입국이 합법적으로 간주되었을 멕시코와 라틴 아메리카 출신 이민자 집단 전체가 갑자기 불법이 되었습니다." 라고 옥시덴탈 칼리지 역사학 교수인 제인 홍은 LA 타임스 에 기고했습니다 ."DACA 학생들과 불법 프로그램이라는 [비난]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라고 쉬는 말합니다. "문제는 언제든 법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그녀는 덧붙입니다. "법은 실제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바뀌고 있습니다."
    202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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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1
    [미국뉴스] 미국은 왜 그린랜드를 탐낼까?(하) 사람과사회
    이러한 피어리의 노력으로 인해 당시 미국 사회에서 그린란드에 대한 인식이 꽤나 높아지게 되었고 그린란드 탐험에 대한 관심도 크게 증가하는 계기가 됐다.그러나 이러한 피어리어의 캠페인에도 그린란드 매입은 실제 시도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물론 당시 미국 정부도 이러한 그린란드의 지정적 중요성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보다 더 중요했던 지역의 매입 문제로 인해 고려 대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당시 미국에게 더 중요했던 지역은 바로 과거 1860년대 당시 정치적 문제로 인해서 매입이 무산되었던 서인도 제도 였다. 1910년대 무렵 덴마크는 여기저기 발품까지 팔아다니며 열강들로부터 그린란드 영유권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었고 같은 시기 미국은 최근 개통된 파나마 운하와의 근접성으로 인해 지정학적 가치가 떡상한 덴마크 소유의 서인도 제도를 매입하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그리고 이 같은 협상에서 덴마크가 소매 판매 조건으로 내걸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그린란드 전체에 대한 영유권 인정이었다. 게다가 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었던 당시 독일의 무차별적인 잠수함 공격은 미국과 덴마크 모두에게 당면한 위협으로 작용하였고 특히나 갓 운하를 개통한 미국의 입장에서 서인도 제도의 매입은 미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더욱더 빠르게 이루어져야만 했다.결국 미국 정부는 파나마 운하의 지각적이고 실질적인 보호를 그린란드의 미래 잠재성보다 우선시하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미국 정부는 서인도 제도의 섬들을 덴마크로부터 구매하여 그 대가 중 하나로서 그린란드에 대한 덴마크의 정치 경제적 지배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말았다. 이와 같은 20세기 초반의 거래로 인해서 미국의 그린란드에 대한 야망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으나 이러한 미국의 욕심은 시간이 흘러가며 과거 몇몇 팽창주의자들의 급진적인 주장에서 점점 더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움직임으로 확장되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공식적인 그린란드 점령의 움직임은 1940년 4월 나치 독일이 덴마크 점령하던 시기에 다시 시작됐다. 이 점령으로 인해 덴마크와 그린란드 간의 통신은 두절되었고 이로 인해 당시 미국은 덴마크를 점령한 나치 독일이 언제 그린란드를 발판 삼아 북미 대륙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그러나 당시까지 표면적으로는 전쟁에서의 중립을 표방하고 있기도 했고 그린란드 점령에 대한 덴마크 망명 정부의 동의도 받지 못했던 미국은 무장한 해군 병력을 자원봉사자라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편성하여 그린란드에 보내버렸고 이후 덴마크 대사와의 합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그린란드에 대한 보호 및 점령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은 그린란드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영구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특히 소련이라는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던 상황 속에서 미국은 서유럽 방어를 위해서 그린란드 기지가 전략적으로 필요하던 상황이었다. 그렇게 미국은 덴마크에게 세 가지 옵션을 제안했는데 기존에 설립한 기지를 99년 동안 임대하는 방안, 미국이 그린란드의 방어를 전적으로 막는 방안, 미국이 그린란드를 아예 구매하는 방안 등이다. 그러나 당시 덴마크는 우리가 미국에 많은 빚을 지고 있지만 그린란드 전체의 값어치만큼 빚진 것은 아니다라고 반발하며 미국이 제안한 세 가지 옵션을 모두 거절해 버렸고 이러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끈질기게 덴마크의 협상을 이어나가고자 했다. 결국 덴마크도 고민 끝에 그린란드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이 멀리 떨어진 자국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안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고 1951년이 되어 미국과 덴마크는 그린란드를 미국에 매각한 것은 아니지만, 미군의 주둔까지는 허용하는 것으로 협정을 체결했다. 그렇게 냉전 기간 동안 미국은 소련으로부터의 안전 보장을 위해서 그린란드에 지속적으로 미군을 주둔시켰고 이렇게 설립된 미군기지는 2024년인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한편, 미국의 그린란드 매입 시도는 2019년 8월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도 한 차례 진행된 바 있었다. 당시 트럼프는 여러 전문가들, 정치인들과 함께 내부적으로 그린란드 매입을 논의했었는데 이 같은 사실이 언론으로 보도되자 덴마크의 총리는 즉각적으로 완전히 터무니없는 주장이며 그린란드와 그 국민들은 판매 대상이 아니다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총리의 반응에 심기가 불편해진 트럼프는 한 달 뒤에 예정되어 있던 덴마크의 국빈 방문을 취소해버렸고 그 뒤로 임기 동안 트럼프는 덴마크를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당시 그린란드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런 트럼프의 그린란드 매입 의사에 대해서 불쾌해하거나 반대하는 여론이 주로 형성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외부적인 관심이 덴마크 정부로 하여금 그린란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그린란드는 공식적으로 덴마크의 영토가 된 이후로도 그 지정학적인 가치로 인해서 끊임없이 주변 국가들의 관심과 야망의 대상이 되어 왔다. 물론 그 주체는 역사적으로 대부분 미국이었지만 최근엔 중국도 그린란드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공항 건설 자원 개발까지 시도해 나갈 정도로 그 관심이 아주 뜨거운 지역이다. 그린란드는 오늘날 여전히 국제정치의 중요한 무대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기후변화와 북극해 항로의 대두로 인해 그 전략적인 가치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부각되고 있고 이 섬이 가진 천연자원, 특히 희귀 광물자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 이러한 자원을 둘러싼 국제적인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여진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린란드는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를 넘어 글로벌 이슈와 연계된 중요한 지역으로서 앞으로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202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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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0
    [미국뉴스] 캘리포니아주 대학생 대상 무료 이민법 서비스 제공 사람과사회
    미 전역에서 불법이민자 단속이 강화되는 가운데,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커뮤니티 칼리지와 주립대 학생들을 위한 무료 이민법 서비스 프로그램을 적극 홍보하고 나섰다.  캘리포니아커뮤니티칼리지재단(FCCC)과 이민법률자원센터(ILRC)는 언론 브리핑을 열고 ‘고등교육 법률서비스 프로젝트(Higher Educa9on Legal Services Project)’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FCCC 의 알론소 가르시아 선임 매니저는 “체류신분 문제로 학업을 중단하거나 미래를 포기하는 일이 없게 하자는 것이 프로그램의 핵심 취지”라며 “소득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신청할 수 있고 학생뿐 아니라 가족 관련 문제도 상담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주정부 예산 연간 1 천만 달러 투입 무료 이민법 서비스는 복잡한 이민 문제를 학생이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 2019 년 주정부가 신설했다. 지금까지 투입된 예산은 약 4000 만 달러로, 매년 평균 1000 만 달러가 운영비로 지원되고 있다.  커뮤니티칼리지 학생들은 웹사이트(findyourally.com)를 통해 상담을 예약한 뒤 온라인 또는 캠퍼스내 지정 사무실에서 이민 전문 변호사나 법률보조원으로부터 서류 작성과 절차 안내를 받을 수 있다. FCCC 에 따르면 캘리포니아내 116 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지금까지 3 만 명 이상이 프로그램을 통해 도움을 받았다. 전체 캠퍼스에 재학중인 서류미비 학생들은 약 7 만 명으로 파악된다.  신청 자격은 풀타임과 파트타임 재학생은 물론, 비학점(noncredit) 및 성인교육(adult educa9on) 과정 수강생까지 포함된다.  상담 내용은 ▲취업 또는 가족 이민 ▲시민권 및 영주권 신청 ▲공적부조(Public Charge) 안내 등으로 다양하다. 또 청소년 추방유예(DACA) 갱신 비용도 지원하고 있다.  DACA 의 경우 이민서비스국(USCIS)이 조만간 법원 명령에 따라 신규 신청서 접수를 재개할 것으로 알려져 도움을 요청하는 학생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DACA 는 2021 년 텍사스 연방지법이 오바마 행정부가 적법한 행정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며 신규 승인 절차를 중단시켰다. 그러나 현재 제 5 연방항소법원에서 일부 절차 재개를 허용하는 잠정 명령이 논의되면서 USCIS 는 법원 지침에 따른 접수 재개 방안을 마련 중이다.   단속 증가에 수요 급증 … 9 개월만에 9 천 명 이용 ILRC 에 따르면 가주 전역에 이민 단속이 강화된 올 초부터 지금까지 9 개월 동안 9000 명 이상이 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예년 평균(연간 3000~5000 명)의 두 배에 달하는 수요다.  ILRC 는 최근 이민단속국(ICE)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학생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는 만큼 온라인 상담 서비스를 확대해 신분 노출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영리재단 중미지원센터(CARESEN)의 야디라 구티에레즈 바르가스 변호사는 “모든 상담 정보는 철저히 비밀이 보장된다”며 “캠퍼스내 상담실 위치도 노출을 최소화하고 있을 만큼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UC·캘스테이트도 지원 무료 이민법 서비스는 커뮤니티 칼리지 외에도 캘스테이트(CSU)와 UC 캠퍼스에서도 운영 중이다. CSU 의 경우 산하 23 개 캠퍼스의 ‘드림석세스센터(Dream Success Center)’를 통해 상담을 제공한다.  CSU 통계에 따르면 2019 년부터 2024 년 4 월까지 1 만 2200 건의 일대일 개인상담을 제공했으며, 8000 건 이상 법률 대리를 맡았다. DACA 신청 및 갱신 도움을 받은 학생도 5000 명이 넘는다.  UC 역시 ‘UC 이민법률서비스센터(UC Immigrant Legal Services Center)’를 통해 2023-24 학년도에만 1572 명에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360 건의 문의에 답했다. 이 통계에 따르면 전체 문의자의 절반 가량인 48%(757 건)은 서류미비자였으며, 36%(558 건)는 추방유예(DACA) 수혜자다. 출신국가별로는 멕시코(1037 건·66%)가 가장 많았고, 엘살바도르(109 건·7%), 과테말라(84 건·5%)에 이어 한국이 34 건(2%)으로 4 번째를 기록했다.   
    202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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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
    [미국뉴스] 한눈에 보는 그래픽 뉴스 - 트럼프, 연준의장 정면충돌 대치 사람과사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청사 건물 개보수와 관련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수사를 개시했다. 파월 연준 의장은 11일(현지시간) 공개한 영상에서 “연준 청사 개보수에 대한 지난해 6월 나의 의회 증언과 관련해 법무부로부터 대배심 소환장과 형사 기소 위협을 지난 9일 받았다”고 밝혔다. 연방정부와 연준 수장의 충돌이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우려가 여당인 공화당 진영에서도 제기되면서 사태의 추이가 주목된다.
    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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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
    [미국뉴스] 미네소타주, 'ICE 총격' 반발해 소송…"연방의 침공, 중단돼야" 사람과사회
    최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총격으로 30대 여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미네소타주가 연방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키스 엘리슨 미네소타주 법무장관은 주 정부와 주 소속 미니애폴리스, 세인트폴시가 국토안보부 등 연방 기관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12일(현지시간) 밝혔다.미네소타주는 소장을 통해 국토안보부 소속 요원을 주 내에 대규모로 배치한 이른바 '메트로 서지' 단속 작전이 위헌·위법임을 선언하고 이를 중단하도록 명령해줄 것을 법원에 요청했다.이들은 국토안보부가 ICE와 세관국경보호국(CBP) 등 소속 요원 수천 명을 두 도시에 투입해 군사작전 방식의 단속을 벌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불법적이고 위험한 검문·체포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엘리슨 장관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무장·복면 연방 요원들이 미네소타를 해치고 있다"며 "이와 같은 '연방의 침공'(Federal Invasion)은 중단돼야 한다. 이를 종식하기 위해 국토안보부에 소송을 제기한다"고 주장했다.이들은 "메트로 서지 작전은 로스앤젤레스, 포틀랜드, 시카고, 워싱턴D.C. 등 민주당 소속 지방정부를 표적으로 삼는 트럼프 행정부의 패턴과 일치한다"며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미네소타 주민들이 의존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연방 자금지원을 불법적으로 삭감하려는 시도까지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연방 요원들은 이날 미니애폴리스에서 한 차량의 뒤를 들이받은 이후 몰려든 시민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을 발사하는 등 마찰을 빚기도 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지난 7일 미니애폴리스에서는 단속 활동을 벌이고 있던 ICE 요원의 총격을 받아 미국 시민인 르네 니콜 굿(37)이 자신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내에서 숨졌다.굿의 총격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굿이 차량으로 요원을 위협한 '테러리스트'라며 요원의 행동을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으나, 민주당 소속인 팀 월즈 주지사 등 미네소타 지역 당국자들은 현장 영상 등을 근거로 연방정부의 해명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한편, 일리노이주도 이날 연방 요원들의 최루탄 사용, 사유지 무단 침입, 번호판 은폐 등을 금지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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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뉴스] 트럼프 "시위대 교수형시 이란에 매우 강한 조치" 軍작전도 거론 사람과사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이란 정부가 반정부 시위대를 교수형에 처할 가능성과 관련, "그들이 그런 일을 한다면 우리는 매우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군사작전도 선택지에서 배제하지 않았다.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내일(14일) 시위대를 교수형에 처하리라는 것을 들었다. 그들이 당신의 레드라인(한계선)을 넘었나'라는 질의에 "교수형에 대해선 들은 바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강력한 조처의 최종 단계는 무엇이냐는 물음엔 "이기는 것이다. 나는 이기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그는 또한 '이기는 것'의 의미에 대해 최근 베네수엘라의 철권통치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군사작전으로 축출한 것과 집권 1기 때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이었던 가셈 솔레이마니에 대한 살해 작전을 펼친 것, 지난해 이란 핵 시설을 기습 타격한 것들을 언급했다.이는 모두 '외과 수술식' 기습 군사작전이었다는 점에서 이란 지도부에 대한 군사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난 (이란 정부가) 시위대에 대한 무분별한 살해를 멈출 때까지 이란 당국자들과의 모든 회의를 취소했다. 도움의 손길이 가고 있다"고 밝혔다.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 글에서 "이란의 애국자들이여, 계속 시위하라. 여러분의 (정부)기관들을 점령하라"며 강경한 시위를 독려하는 한편 "(여러분을) 살해하고 학대하는 이들의 이름을 남겨라. 그들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이란 지도부에 경고했다.트럼프 대통령은 SNS 글에서 이란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도움의 손길이 가고 있다"라고 밝힌 의미를 묻자 "다양한 형태로 많은 도움이 가고 있다. 우리 입장에선 경제적 지원도 포함된다"고 했다.이어 "현재 실제 상황은 모른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해했는지 정확한 수치를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상당히 많은 수일 것 같고, 그건 그들에게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내 문제가 아닌 대외 이슈에 집중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내 주요 관심사는 바로 여기에 있다"면서도 "하지만 위험한 위협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또 "(미래에) 핵무기를 가진 이란을 잊어선 안된다. 중동에 막대한 부(富)가 있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며 "나는 이 나라에 매우 집중하고 있지만, 전 세계에 평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나는 8개의 전쟁을 종식시켰다. 만약 그 8개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면 이 나라에 매우 나쁜 일이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국제 이슈에서 자신의 도덕성만이 행보 및 권한을 제한할 수 있다고 밝힌 것에 대해선 "나는 도덕성인 사람이다. 죽음을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이 다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상대방이 다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이어 "베네수엘라에서 우리는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상대방은 많은 이가 죽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디트로이트 방문을 마치고 워싱턴DC로 돌아오는 길에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취재진과 만나서는 이란 정부가 살해한 시위대 수치에 대해 "20분 안에 정확한 수치를 확보할 것이다. 규모가 상당해 보이지만 아직 확실히 알 수는 없다"며 "나는 20분 안에 알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백악관 풀기자단이 전했다.그는 이란 지도자들에 대한 메시지를 묻자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야 한다"며 "매우 곧 보고받을 예정인데, 내가 보기엔 그들은 매우 잘못 행동하고 있다"고 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미국의 공격시 보복을 위협하는 것에 대해선 "이란은 지난번에 내가 지금은 없는 핵 시설을 타격했을 때도 그렇게 말했다"며 "그들은 잘 처신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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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
    [미국뉴스] 그린란드 정당들 "미국인도, 덴마크인도 되고 싶지 않다" 사람과사회
    덴마크령 그린란드 정치 지도자들이 "미국인이 되고 싶지 않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합병 시도를 그만두라고 촉구했다.dpa통신 등에 따르면 옌스 프레데리크 닐센 총리(민주당)를 비롯한 그린란드 의회 5개 정당 대표는 9일(현지시간)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미국인도, 덴마크인도 되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린란드인이길 원한다"며 "그린란드의 미래는 그린란드인이 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를 무시하는 미국의 태도가 끝나길 바란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고 밝혔다.정당 대표들은 그린란드를 둘러싼 최근 논쟁을 논의하기 위해 내달 3일로 예정된 의회 소집을 앞당기기로 했다.집권 1기 때부터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인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 영토를 차지하겠다는 뜻을 갈수록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은 9일에도 "친절한 방식으로든 더 힘든 방식으로든 무엇인가를 하겠다"며 그린란드 문제에 강압적 수단도 동원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덴마크와 그린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반발에는 "그들이 좋아하든 말든" 덴마크를 확보하겠다고 했다.로이터통신은 미국이 그린란드를 덴마크에서 분리한 뒤 미국에 편입하기 위해 주민 1인당 1만∼10만달러(1천460만∼1억4천600만원)의 현금을 살포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고 보도했다.그린란드는 18세기부터 덴마크 식민지배를 받다가 1953년 본국으로 편입돼 덴마크에도 감정이 좋지 않다. 작년 1월 여론조사업체 베리안이 그린란드 주민에게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56%는 독립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덴마크에서 독립해 미국에 편입되는 데는 85%가 반대했다.그린란드 출신 덴마크 의원 아야 켐니츠는 블룸버그통신에 "어떤 금액으로도 우리 민족 영혼을 살 수 없다"며 "사람들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례한 일"고 말했다.
    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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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5
    [미국뉴스] 미국과 '3자 담판' 앞두고 덴마크·그린란드 의회 대책회의 '파행' 사람과사회
    마크 루비오 국무부 장관을 포함한 미국, 덴마크, 그린란드의 외교 수장들이 내주 워싱턴 DC에서 만나 그린란드의 '미래'를 놓고 3자 담판에 나선다.덴마크가 밖으로는 그린란드를 내놓으라는 미국의 요구에 맞서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수십 년 동안 독립을 추구해온 그린란드를 관리해야 하는 '내우외환'의 처지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온다.로이터 통신은 10일(현지시간) 분석 기사에서 덴마크가 오래 전부터 이탈 노선에 들어선 영토인 그린란드를 지켜야 하는 딜레마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루비오 장관과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교장관, 비비안 모츠펠트 그린란드 외교장관은 내주 3자 회동을 한다.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매입 등의 방식으로 차지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힌 후 처음으로 열리는 당사자들의 회동이다.그린란드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오히려 덴마크와 그린란드 사이 불협화음은 커진 모습이다.덴마크와 그린란드 의회의 외교위원회는 지난 6일 화상으로 대책 회의를 열었지만 격렬한 의견 충돌 속에서 회의가 끝났다.그린란드 의회 외교위원장인 피팔루크 링에는 그린란드 정치인들이 참여하지 못한 채 덴마크 의회가 그린란드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우리를 배제하는 것은 신식민주의 방식"이라고 비판했다.덴마크는 헌법상 자치령인 그린란드의 외교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린란드 정치인들은 덴마크를 뺀 채 미국과 직접 대화를 추진하려는 기류도 강해지고 있다.내주 워싱턴 3자 회동에 참석하는 모츠펠트 장관은 9일 덴마크 DR방송 인터뷰에서 "그린란드는 미국이 필요하고, 미국은 그린란드가 필요하다는 점이 분명하다"며 "우리가 미국과 단독으로 만남을 가져도 문제가 되겠는가"라고 말했다.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린란드 외교장관이 덴마크 없이 미국과 단독으로 만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언급했다"며 "이는 그린란드와 덴마크를 떼어놓으려는 미국의 전술이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일부 그린란드 정치인들도 미국과 직접 협상하자고 적극적으로 주장한다.그린란드 제1야당 대표인 펠레 브로베르그는 캐나다 방송 CBC에 "그린란드인들이 미국과 직접 얘기해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답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린란드에서는 1979년 일정한 자치권과 독자 의회를 갖게 된 이후로 덴마크에서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커졌다. 2009년 협정으로 그린란드 주민들은 원할 경우 독립할 수 있는 권리도 명시적으로 갖게 됐다.다만 그린란드 경제는 연간 6억1천만달러에 달하는 덴마크의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런 탓에 그린란드인들 사이에서는 덴마크의 지원 없이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지역 경제가 충분히 강해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었다.이에 일부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그린란드 주민들에게 직접 자금을 지급해 미국과의 관계를 깊게 맺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로이터 통신은 "그린란드 주민들이 독립을 선택하거나 자체적인 합의를 체결한다면 덴마크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아무런 성과도 남기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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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4
    [미국뉴스] 재미있는 미국 역사 2 <미국에서 국경 횡단이 범죄가 된 이유> 사람과사회
    HISTORY.com에 의하면 1929년, 1325조는 최초로 불법 이민을 범죄화했습니다. 이 법안의 목적은 멕시코 이민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20세기 초에는 허가 없이 미국에 입국하는 것이 범죄가 아니었습니다. 당국은 공식적인 입국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민자들을 여전히 추방할 수 있었지만, 연방 범죄로 구금되거나 기소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1929년 미국이 이전에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이민자 집단, 즉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넘는 사람들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1920년대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경을 특별히 문제가 되는 지역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라고 미국 가톨릭 대학교 역사학 교수이자 『멕시코 탈출: 크리스테로 전쟁의 이주민, 망명자, 난민』(Mexican Exodus: Emigrants, Exiles, and Refugees of the Cristero War) 의 저자인 줄리아 영은 말합니다 .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배를 타고 왔기 때문에 이민 규정은 동부 또는 서부 해안의 입국 항구에 집중되었습니다."국경 순찰대는 1924년에야 설립되었고, 멕시코에서 온 이주민만을 처리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처음에는 금주법 시대에 주류와 총기 밀매를 단속하는 한편, 멕시코를 통해 들어오려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차단하는 역할도 했습니다.아시아계 이민자들은 1882년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을 시작으로 "불법" 이민자로 간주된 최초의 집단이었습니다 . 수십 년 후, 1917년 이민법은 아시아로부터의 거의 모든 이민을 금지하는 "아시아 금지 구역"을 설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을 위반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었습니다. 미국은 불법 이민자를 추방할 수는 있었지만, 기소할 수는 없었습니다.'불법' 이민의 탄생오랫동안 미국으로 불법 이민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당시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남유럽과 동유럽 출신이었는데, 이는 미국이 백인 앵글로색슨계 개신교도들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국 의 토착민주의자들과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 같은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1924년, 토착민주의 정치인들은 새로운 이민법을 통과 시켜 국가별 할당제를 도입했습니다. 이 법안은 북유럽과 서유럽 출신자들에게 대륙 남동부 출신자들보다 훨씬 더 큰 특혜를 주었지만, 아시아로부터의 이민은 여전히 거의 전면 금지했습니다.토착주의자들은 멕시코 이민 또한 제한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1920년대 멕시코 혁명 으로 인한 난민들이 이주하고 남서부 고용주들이 아시아 이민자가 없는 상황에서 값싼 노동력을 찾으면서 이민이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이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 농업은 멕시코 노동력에 크게 의존했고, 이 산업의 강력한 영향력은 1924년 법안이 북미와 남미 어느 나라에도 이민 할당제를 도입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이민1929년, 백인 우월주의 상원의원 콜먼 리빙스턴 블리스는 농업과 토착민의 이익 사이에서 타협안을 제안했습니다. 멕시코에서 오는 이민자의 수를 제한하는 대신, 미국은 공식적인 입국 지점을 통해 국경을 넘지 않는 사람들을 범죄자로 규정하는 법을 통과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입국 시 수수료를 내고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이 입국 지점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이민자들이 수십 년 동안 미국과 멕시코 시민들이 해왔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국경을 계속 넘나들었습니다. 역사학자 켈리 리틀 에르난데스는 The Conversation 에 기고한 글에서 "많은 멕시코 노동자들에게는 입국료가 엄청나게 비쌌습니다."라고 썼습니다 . "게다가 미국 당국은 멕시코 이민자들이 몸에 질병과 오물을 묻힌다고 믿었기 때문에 특히 멕시코 이민자들에게 등유 목욕과 굴욕적인 이 제거 수술을 시행했습니다."블리즈 법은 통과되어 미국 법전 제8편 제1325조가 되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이 법은 일부 사람들에게 국경을 넘는 것을 범죄로 규정했습니다. 1325조에 따라 불법 입국은 첫 번째 위반 시 연방 경범죄, 두 번째 위반 시 중범죄로 처벌되었습니다. 두 가지 혐의 모두 벌금형 또는 징역형으로 처벌될 수 있었습니다. 이 법은 모든 이민자에게 적용되었지만, 멕시코로부터의 이민을 제한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1325조가 통과된 후 첫 10년 동안 미국은 이를 이용해 약 4만 4천 명의 이민자를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대공황 당시 원주민 보호주의자들이 멕시코인들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에 따라 "송환 정책"을 통해 수십만 명, 아니 수백만 명의 이민자를 체포하여 추방했던 것에 비하면 적은 숫자였습니다.냉전이 현대 중미 이주 위기에 어떻게 기여했는가수십 년 동안 중앙아메리카 출신 이주민들은 부패, 범죄, 빈곤, 폭력으로부터 고향을 떠나 미국에서 더 나은 삶을 찾아왔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무엇일까요? 바로 냉전입니다.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이 전쟁 수행을 위해 더 많은 노동력을 확보함에 따라 1325조에 따른 기소는 감소했습니다. 1942년 미국은 단기 농업 프로젝트에 30만 명이 넘는 멕시코인 이주 노동자를 투입하기 위한 브라세로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 이는 많은 미국인들이 해외에서 전투를 벌이는 동안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브라세로 프로그램은 1964년까지 지속되었지만, 프로그램이 종료된 후에도 미국은 1325조에 따른 이민자 기소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습니다. 형사 기소는 시간, 비용, 자원을 소모했고, 대통령 행정부는 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수백만 명의 멕시코 이민자를 추방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 이후에야 미국은 1325조에 따른 기소를 더욱 정기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이러한 기소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도 계속되었습니다. 1325조는 정부가 국경에서 부모와 자녀를 분리하는 근거가 되며, 2020년 대선에서 주요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2019년 6월 26일 첫 민주당 예비선거 토론에서 훌리안 카스트로는 모든 민주당 후보에게 1325조 폐지를 약속하는 데 동참할 것을 촉구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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